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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 미니 5 사용기 (+애플펜슬, 스마트커버, SD 라이트닝 어답터)

파란참치캔 2019. 11. 8. 22:30

아이폰 3Gs로 앱등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째다.

많은 아이폰, 아이팟, 세 대의 맥과 심지어 공유기까지 여러 대를 구비했지만 끝까지 살 일이 없었던 아이패드. 정확히 말하자면 구입할 명분이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패드를 생산성 도구로 인정한 적이 없고, 노트북과 핸드폰 둘로 충분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봐야 할 자료가 늘어나며 아이패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가볍기도 하고, 화질도 좋으니까 논문과 PPT를 볼 때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리고 북스캐너를 가지고 있으니 전공책을 죄다 스캔떠서 아이패드에 넣어다니면 참 편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럼 이제 모델을 고를 차례. 구형은 사기 싫었다. 프로, 에어, 미니 중 골라야 하는데 에어는 그냥 안 끌렸다.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니 에어 살바엔 프로 산다는 생각? 근데 미니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화면이 생각보다 널찍하고 해상도도 높아서 PPT나 논문 자료 보기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글씨가 작으면 조금씩 확대해서 보면 되고...

그리고 크기가 작으면 지하철같은데서 꺼내보기도 편하고, 실습복 주머니에도 들어가니 실습 수업 때 손이 훨씬 자유로울 것 같았다.

음...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대중교통에서 보통 수면을 택하는 편이고, 해부 실습 때 아이패드를 깔짝거릴 여유 따위는 없다 하더라.

뭐 할튼 그래서 아이패드 미니에 꽂혀서 그걸 사러 애플 가로수길에 갔더니 추석이라고 보기좋게 닫혀있었다. 절망하며 며칠 후 픽업...

애플펜슬은 원래 안중에도 없었는데, 동기들이 펜슬로 PDF에 annotate하는 걸 보고 왠지 부러워서 같이 질렀다. 글치... 그냥 보는 것도 좋지만 가볍게 조금씩 적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 그 좋다는 노타와 굿노트도 써보고 싶고ㅋㅋ

패드와 펜슬은 온라인 결제 후 픽업신청했고, 스마트커버와 SD카드 라이트닝(lightning) 어답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구매했다. 저 어답터를 산 이유는... 여행갈 때 아이패드와 카메라를 가져가서 낮에는 실컷 사진찍고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서 패드로 사진을 리뷰하며 보정하겠다는 거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ㅋㅋㅋㅋ 쨌든 그래서 본의 아니게 거대한 지름을 거행했다.

2019.09.17.

예쁘게 잘 포장된 아이들. 하나하나 언박싱했음.

보돌보돌한 스마트커버, 영롱한 애플펜슬 (1세대). 이제 나도 본격적인 아이패드 유저라고!

애플 참 포장 깔끔하게 잘 한다. 갈수록 언박싱하게 쉽게 진화하는 모습도 보기 좋고.

좀 쓸데없지만 제조년월 은근히 신경쓰는 편. 9월에 샀는데 7월 생산이면 훌륭하군!

충전기는 10와트, USB A to lightning을 넣어준다. C타입이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구형 폼팩터를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가격을 취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충전방식. 실용성을 따지면 난 의외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음. 애플펜슬2 호환 안 된다. 그건 자석으로 붙여서 충전하니까.

그레이 아님

사과는 반딱반딱 유광으로, 전통적인 디자인 계승. 지문 엄청 잘 묻고 바람만 불어도 흠집 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진 않더라...? 아주 미세하게 음푹 파여있기도 하고, 좀 거친 천으로 문질러도 광택은 그대로였다.

스마트커버는 비싸지만 애플이 보여주는 마감수준을 생각하면 납득이 안 되진 않는다. (원래 삼각기둥을 저 방향으로 세우면 안 된다ㅋㅋ 반대로 해서 안쪽 보들보들한 스웨이드가 바깥으로 보이게 해야 안정적)

자석이 착 붙는 느낌도 좋고, 화면도 잘 덮어준다. 후면 보호가 안 되는건 단점이지만 사람에 따라 가벼운 이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난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음.

언제나 설레는 첫 시동. 구형 디자인이지만 난 이것도 안정적이고 좋다. Touch ID가 살아있는 건 보너스. Face ID는 바닥에 패드를 눕혀놓고 쓰면 불편하다. 물론 그만의 장점도 있지만?

너무 옛날이라 잘 기억이 안 나네ㅋㅋ 패드를 켜고 처음으로 한 것은 사진보정! 후지피름 X100F로 찍은 RAW(RAF) 사진을 SD 어답터로 옮겨서 보정을 시도해봤다. 매우 빠르고 안정적임. 악세사리 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일단 써보면 소프트웨어 integration 등이 예술이다. 망할 놈들 다 지네거 사게 만드는 악덕한 전략이다.

아, 전송 속도는 빠르지만 무거운 파일이다보니 핸들링할 때 살짝 버퍼링이 있긴 하다. 풀스크린 또렷하게 렌더링하는 것도 바로바로 되는 건 아니고, 2~3초 정도 딜레이 있음. 아마추어 수준에서 불평할 정도는 아니다.

기본 Photos 앱의 보정 패널은 이렇게 생겼다. 허용하는 효과의 범위가 그리 dramatic하진 않지만, 기본은 다 하는 느낌. 슬라이더의 배치가 빠른 워크플로우에 적합하지는 않다. 얘네가 인터페이스를 왜 이렇게 해놨지? 차라리 플로팅 패널을 하나 띄우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어차피 이거 제대로 쓰는 사람들은 다른 앱 깔아 쓰겠지하는 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 (정보: 아이패드용 포토샵도 상황이 비슷하긴 함)

비교적 최신 RAW profile도 잘 읽어낼 만큼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실용적이지 못한 인터페이스는 얘네답지 않다.

아웃포커스돼버렸지만 이렇게 한 손에 들고 AR 앱을 쓰기도 편하다.

아래로는 그냥 산발적으로 드는 생각들:

  • 디자인 참 예쁘다. 현 아이패드 프로 3세대의 각진 디자인도 예쁘지만, 날렵한 예전 디자인도 완성형같음. 베젤은 뭐 사람에 따라 아쉬울 수 있겠지만 난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 Touch ID는 다 좋은데 애플펜슬로 뭐 끄적이다 손으로 눌러서 갑자기 홈스크린으로 오면 좀 거슬린다.
  • 스피커는 크기에 비해 매우 준수.
  • 기본제공 충전기는 10W, 최대 18W 입력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애플펜슬은 생각보다 무겁다. 오래 필기용으로 쓰면 백퍼 손목 아픔.
  • '생각보다' 화면이 크다. 가벼운 웹서핑, PDF 보기에 훌륭. 심지어 나는 스플릿스크린(split screen)까지 잘 쓴다.
  • 애플이 무료로 제공하는 온라인 세션은 놓치지 말고 신청하자. 의외로 유용한 꿀팁 많이 준다.
  • 미니5로 타자칠 생각은 하지 마라. 차라리 세로로 잡고 양손으로 쥐어서 치면 좀 낫긴 한데 영...
  • 가볍다. 깃털만큼.
  • 튼튼하다. 어지간해서 고장 안 날것 같이 생겼음. 오래 사용된 폼팩터인 만큼 신뢰가 간다.
  • 배터리는 명불허전 아이패드. 9-10시간은 간다.
  • 속도는 빠르지만, 대용량(40-50MB) Raw 편집 등에는 얄짤없다. Post processing 작업시 5-7초 정도 로딩.
  • 지하철에서 뭐 보기엔 참 좋다. 서서 한 손으로 들고 봐도 웬만한 잡지보다 훨씬 가벼움.
  • 애플펜슬을 따로 들고다녀야 하는 건 참 애매하다. 나는 연필답게 필통에 넣어다님. 필감은 훌륭하지만 딜레이가 없지 않다.
  • 3.5pi 이어폰 구멍(단자)이 남아있는 건 경우에 따라 매우 큰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딜레이 없는 송출!
  • 스마트커버를 씌운 미니5는 모든 아이패드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다.

결론적으로 매우 매우 훌륭한, 컴팩트하지만 거의 모든 걸 할 수 있는 미니. 간단히 웹서핑하고 (특히 PPT) 자료 보는 용도로 패드를 구비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가격적인 메리트도 뛰어나고, star walk같은 앱으로 AR 기능 쓰기에도 이만한 패드가 없다.

하지만 난 팔았다. 열흘 묻지마 환불 기간 안에 악세사리까지 전부 환불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애플펜슬 1세대가 필기용으로 너무 무겁다는 것! 10분 이상 잡고있을 수가 없었다. 미끄러운 건 천테이프를 감든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무겁고, 무게중심이 뒤로 치우친 구조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동기의 애플펜슬2를 쥐어보니 이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딜레이가 조금 덜한 건 둘째치고, 필기를 할 때 부담이 훨씬 적었다. 그말은 즉 피로를 줄이고 더 오래 쓸 수 있다는 말. 이거 하나만 보고 달려가서 프로3로 교환했다. usb-c로 충전포트가 바뀌는 건 덤?ㅎㅎ

원래 안중에도 없던 애플펜슬 때문에 결국 프로3로 업그레이드라니... 참 아이러니하고만.

다시 말하지만 아이패드 미니5도 성능은 충분하다. 화면 크기도 경우에 따라 오히려 큰 놈들보다 적절할 수 있고? 폼팩터를 유지하는 대신 최신 성능, 디스플레이와 함께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취했다. 잘 생각해보시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