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 with Toy Hand Grenade in Central Park, 1962, Diane Arbus
아버스는 내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사진작가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성공적인 상업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날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길 밖으로 나섰다. 후문으로는 부족함 없는 본인의 삶에 염증을 느꼈다는 말이 있다.
Identical Twins, Roselle, New Jersey, 1967, Diane Arbus
이 사람의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그녀가 길 밖에 나간 뒤에 찍은 사진들이다. 기형아, 동성애자, 혹은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담은 작품이 많다. 그걸로 유명해지기도 했고. 하지만 단순히 이런 사람들을 찍어서 아버스가 유명한 것은 아니다.
요즘 심심하면 이슈가 되는게 카메라를 들고 쪽방촌을 어슬렁거리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다. 허락도 없이 그 동네 거주민들을 렌즈에 담고, 대충 흑백으로 떡보정해놓고선 유치하게 감성사진이라고 사람들의 관심을 얻으려 하는 미친 자들. 손탁이 말했듯,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총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정신적으로 피사체를 죽이거나 소유하는 행위다. 이 사람들이 손에 쥐고있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총이다. 잔인하게 피사체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그들은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하는 관찰자도, 정적을 깨고 교감하려는 손길도 아닌 살인마에 불과하다.
Retired Man and His Wife at Home in a Nudist Camp One Morning, N.J., Diane Arbus
그럼 아버스는 뭐가 다를까. 모델의 표정에 어색함은 묻어나지만 카메라를 향한 경계, 혹은 두려움이 드러나진 않는다. 당신같으면 말 몇마디로 경계를 깨고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나체로 찍을 수 있는가? 아버스는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이었고, 충분히 해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소외당한 사람들은 (지하철 몰카의 대가 에반스의 작품에서와 정반대로)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전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그렇기에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없지 않은 듯하다.
또, 이렇게 담은 사람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회화적인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우리가 평소에 이런 대상을 찍은 사진에 기대할 법한 요소가 전혀 들어가있지 않아 어색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아버스는 '이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있다'라는 식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호소하기보단 그냥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찍고싶었던 것 아닐까.
사실 정말 궁금하다. 어떤 식으로 접근했길래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사람들의 경계를 확 풀어버릴 수 있었는지. 카메라 세팅값 몇 개 설정하는 것보단 훨씬 어려운 기술임이 분명하다.
참고로 아버스는 수면제를 먹고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 참 알 수 없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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