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디지털사진 수업시간. 어느날 선생님은 위 사진을 보여주시며 이 작품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Equivalents 연작 중 하나인데, 왜 평범한 구름을 찍은 듯한 이 사진에 equivalents라는 이름이 붙었을지 생각해보라 하셨다. 처음 보는, 지극히 평범한 흑백사진. 테크닉적으로도, 소재도 전혀 특별할 것이 없었기에 왜 equivalents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왜 선생님이 이 사진을 보여주셨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아, 물론 지금은 알지. 스티글리츠가 왜 대단한 사람인지ㅋㅋ 사진이 예술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제 비교적 자명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진은 기존의 회화와 많은 차이점을 갖는다. 이는 단지 두 예술 장르가 각각 사용하는 도구나 기법, 혹은 선호하는 소재의 차이 뿐이 아니다. 두 예술은 다른 방식으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소비된다. 단적인 예로, 전통적인 회화 작품의 소비는 배타적이다. 즉, 원본과 복사본의 가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사진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필름, 첫 현상작 중 무엇을 원본으로 봐야 하는지도 애매하지만 오히려 사진의 경우 많이 복사되고, 많이 소비될 수록 높은 가치를 가지는 형상을 띤다.
작품을 구현하는 방식과 소비되는 방식의 차이가 크지만, 회화든 사진이든 특정 작품 혹은 작가를 무척 높게 사는 공통적인 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독창성. 즉,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것에 처음 도전한 작가는 높은 명성을 얻는다. 스티글리츠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다게르가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사진을 발명한 뒤(daguerreotype, 은판사진법),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정보 전달을 주 목적으로 삼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리고 회화를 모방한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을 표방한 사진작가. 전자의 대표주자로는 Fox Talbot, 후자의 대표주자로는 Louis Daguerre가 있다.
다만 다게르를 포함한 그 당시 다수의 소위 예술사진작가들은 스스로 사진을 회화의 아류작으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표현이 거칠지만, 실제로 이 사람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사진의 능력을 적극 활용하기보다는 의도적으로 필름에 과한 후보정을 하고, 현실적이지 않은(단, 초현실주의는 아니다) 느낌을 주며 회화를 모방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사진은 예술로 공공연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보들레르같은 사람들을 봐라.) 결국 회화의 인상주의 화풍을 피상적으로 모방한 것에 불과한 회화적 사진이 쏟아져 나온다.
스티글리츠는 이런 현상이 꽤나 불만족스러웠나보다. 물론 그도 초기에는 회화주의 사진을 줄창 찍어댔지만,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진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사진 분리파(Photo-Secession Group) 운동을 시작하며 순수사진(Straight Photography)을 밀어붙인다. 이건 결국 기존의 회화적 사진에서 벗어나 사진이 가진 정확한 묘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예술 사진을 찍겠다는 말이었다.(피터 에머슨이 19세기에 펼친 자연주의 사진의 연장선이라 봐야 하겠다.) 실제로 그의 구름 사진이 그의 291 화랑에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당시에는 아무도 평범한 구름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테니.
그렇다면 내 고등학교 선생님이 던진 질문의 답, equivalents라는 작품명이 가진 본뜻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마 현실과 내면, 즉 사실적인 형상과 추상적인 예술성의 등가를 의도한 뜻이었을 것이다. 화려한 기법 없이 평범한 구름을 찍은 사진이지만, 그 덕분에 구름의 사실적인 묘사와 그 안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 소위 말하는 예술성이라는 것이 동등하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회화는 더이상 사실주의에 집착할 필요를 잃어 추상화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고, 사진도 회화의 아류작스러운 회화적 사진에서 벗어나 저만의 독창적인 예술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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