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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앱등이의 에어팟 세 달 사용기

7월에 그 구하기 힘들다는 에어팟(육주팟)을 구하고 벌써 세 달이 지났다. 새로운 장르의 물건은 아니지만 확실히 기존 제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던 물건이라 그런지 꽤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에어팟을 열심히 사용한지 3개월이 된 시점에서 그동안의 느낀점을 간단하게 써본다.

우선 내가 에어팟을 구입한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애플님이 아이폰 7에 이어폰 구멍을 없애버린 덕에 무선 이어폰을 하나 구해야 했다. 그리고 난 앱등이라 (그렇게 당해놓고) 일단 애플에서 만든 물건인 만큼 못해도 중간 이상은 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물건을 선호하는 마이너한 취향에도 잘 맞았고, 생각보다 괜찮아보이는 디자인도 한 몫 했다.

디자인은 역시 애플.

예쁘다. 아니, 꼈을 때 어떤 형상인진 잘 모르겠지만 물건만 놓고보면 예쁜 편이다. 마감도 뛰어나고, 애플다운 간결함도 보인다. 예를 들어 저 꼬다리 끝에 장식처럼 보이는 금속부는 사실 충전용 접점이라든지. 기능은 많지만 그로 인한 군더더기는 적다. 꼈을 때도 남들이 안 쳐다보는걸 보면 그리 이상하진 않은 것 같다.

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인디케이터 불빛도 깔끔하고 직관적이다. 설명서를 정독하지 않아도 조금만 만지작거리다보면 각 불빛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대충 눈치챌 수 있다.

다만 새하얗고 피부에 직접 닿는 물건이다보니 오래 쓰면 변색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케이스 틈 사이에 먼지가 앉기도 하고. 물론 그런 거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자주 청소를 할테니 별로 큰 문제는 아닌 듯하다.

편하다. 휴대성은 보통.

애플 제품 유저라면 이보다 쓰기 편한 이어폰은 찾기 힘들 것 같다. 페어링은 한 번만 하면 되고, 그 과정도 너무 단순하다. 걔네가 홍보하는대로 케이스 뚜껑을 열고 아이폰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난다.

맥이나 아이패드 등 여러 애플기기를 동시에 쓰면 에어팟이 알아서 기기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것 같다. 맥을 켠다고 바로 에어팟이 아이폰에서 맥으로 넘어오진 않고, 맥 상단바에 있는 사운드나 블루투스 아이콘을 눌러 에어팟을 선택해줘야 한다. 다시 아이폰으로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로 iOS 제어센터에서 에어팟을 선택해주면 된다.

얼핏 들으면 불편해보이지만, 이 과정이 사실 3초 남짓 걸리는데다가 이걸 기계가 알아서 스위칭하게 맡겨버리면 내가 의도하지 않는대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지금 방식이 마음에 든다. 애플워치랑 아이폰 사이에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싶은데 내 애플워치가 맛탱이가 간지 몇 달 돼서 테스트 못 해본건 아쉽다. 빨리 서비스센터 가야하는데 너무 귀찮다...

결론은 애플 제품을 쓴다면 무척 편하다는 것. 타사 기기에도 블루투스로 연결할 수는 있지만 추천하진 않는다. 많은 기능을 못 쓰고, 돈값 못 한다.

휴대성은 생각보다 별로다. 아니, 타 제품에 비해 뛰어나지 않다. 제품 특성상 케이스를 항상 들고다녀야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집앞 슈퍼 갔다 오는 정도면 문제 없지만 그보다 멀리 간다면 노래를 안 듣는 동안 에어팟을 보관할 장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케이스는 필수다. 은근히 부피가 있어서 주머니에 넣기가 부담스럽다. 특히 난 한쪽 주머니에 지갑, 한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다녀서 이것까지 챙기면 주머니가 너무 뚱뚱해지는 참사가 벌어진다. 조그만 가방을 들고다닌다면 당연히 문제 없다.

음질은 전형적인 블루투스 이어폰. 마이크 성능은 발군!

블루투스 음질이 떨어지는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대중음악 들을 땐 별 문제 없지만 클래식, 특히 피아노 곡을 들으면 고음이 찢어지는게 너무 적나라하게 들린다. 에어팟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피아노 곡 위주로 들어서 그런지 이어팟 수준의 음질을 기대했다가 많이 실망했다. (너무 지직거리며 무너져서 처음엔 고장난 줄...)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어팟, 에어팟 사이 음질 차이가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 웬만한 대중음악을 듣기엔 아무 지장이 없는 듯하다.

마이크 성능은 정말 뛰어나다. 내가 에어팟을 쓰는 주 목적은 통화인데 작게 말해도 상대방이 잘 알아듣는다. 조금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목소리 픽업이 잘 되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정말 굿굿굿.

마이크가 좋아서 그런지 시리 인식률도 좋다. 그런데 원래 시리 잘 쓰던 사람 아니면 여기 있어도 잘 안 쓸 것 같다. 어느쪽 유닛이든 톡톡 치면 시리가 튀어나오는데 본인이 이 기능을 잘 안 쓰면 시리 대신 다른 기능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 여담이지만 유닛을 너무 가볍게 치면 인식이 안 된다.

착용감은 아주 훌륭하다. 고개를 미친듯이 흔들어도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인다. 운동할 때 써도 괜찮다. 물론 이것도 사람 귀에 따라 다를듯. 이어팟이 잘 맞으면 에어팟도 잘 맞는다 그러는데 어느정도 맞는 말 같다. 에어팟이 아주 살짝 더 두꺼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양쪽 분리형 타입이 가지는 이점이 몇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한 쪽으로 듣고 한 쪽은 충전해놓을 수 있다. 이 경우 스테레오 사운드가 듣고있는 한 쪽으로 다 나온다.(모노 사운드로)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굉장히 중요한 기능. 또 노래를 듣다가 한 쪽만 빼면 일시정지, 양쪽 다 빼면 정지가 되는데 옆에서 누가 말을 걸 때 한 쪽만 빼서 일시정지시키고 대화를 나눈 다음 다시 끼우면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능은 무척 편리하다. 마지막으로 두 명이 한 쪽씩 나눠서 들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배터리는 정말 훌륭하다. 그냥 잊고 지내도 될 수준. 사실 음악을 연속으로 5시간씩 듣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케이스 안에 보관만 해두면 빠른 속도로 충전이 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케이스만 충전해놓으면 배터리 스트레스 없이 에어팟을 쓸 수 있다.

전체적으로 꽤 만족스러운 물건이다. 애플의 1세대 제품답지 않게 별다른 결함도 없고, 사용성 측면에서도 많은 고민을 해놓은 흔적이 보인다. 여타 애플제품과 마찬가지로 스펙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직접 쓰다보면 느낄 수 있는 배려가 많이 느껴진다. 음질은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이고, 페어링 등 사용성도 뛰어나고, 배터리와 디자인도 훌륭하다. 가격은 좀 있지만 블루투스 이어폰 중 이만한 물건 찾기 힘들듯!